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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병치레 없이 자랐다. 초등학교때 장염이 한번 걸렸던것 빼고는 몸이 약하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대학생이 될 때 까지는 차를 탈 때마다 멀미를 하긴 했지만 평소 이런 저런 운동을 해서인지 스스로 건강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군대 갈 나이가 됐을 때 별 생각 없이 해병대에 지원 한것도 어쩌면 내 신체에 대한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제대 후 편입을 하고나서 부터 가슴이 답답한 일이 자주 생겼다. 그 땐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스트레스 였던것 같다. 편입 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지만, 학교를 옮기고 새로 적응하고 하는 동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것 같다. 정말 의자에 오래 앉아있었던것 같다. 그다지 좋지 않은 머리로 한꺼번에 많은 과목들을 수강 하다 보니 집중하는것도 중요했지만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는것은 당연히 필요했다.
졸업을 하고 미국에 유학을 왔을 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활비를 줄일려고 많이 애썼다. 먹는게 부실해 졌지만 딱히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세 깨 굶지 않고 살았던것은 부모님의 지원 덕분이다. 미국 생활 2년이 지날 때 까지는 딱히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 매 6개월 마다 끼던 안경을 바꿔야 했던것 말고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시력이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고, 안경 도수를 서너번 바꾸고 나서는 나빠지는 속도가 좀 느려졌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건 미국에 온지 이년이 조금 지난 어느 날 이었다. 밤에 두번 자다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두세번 갔다오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배에 통증이 있었고, 설사를 했다. 그 땐 몰랐다. 이게 십년니 넘게 계속 되리라는걸. 하루에 적게는 한번, 많게는 세네번씩 화장실을 갔는데, 갈 때 마다 설사다. 이런적이 살면서 한번도 없었기에 당황 스러웠지만, 학교 생활로 바쁘다 보니 그냥 지나치게 됐다. 몇달 후 찾은 소아과 전문 병원에서 과민성 대장과 우울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과민성 대장. 인터넷에 찾아보니 내가 몰랐을뿐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겪고있는 병이란걸 알았다. 증상도 다양한데 보통 변비 아니면 설사로 나타나고, 심해지면 차 타고 어디 가는게 두려워 진다는. 우울증 진단은 그리 놀랍진 않았다. 아주 오래전 부터, 아마도 중학교 1, 2 학년 때 부터로 기억하는데, 항상 약간 우울한 상태로 있었던것 같다. 미국 유학을 하는 동안 엄마가 돌아 가시고 나서 증상이 좀 더 심해진것 같다. 의사는 우울증 약을 먹으록 처방을 해 줬는데, 약값이 한달에 100불 정도 했다. 한달 먹고, 그만 먹었다. 경제적으로 계속 약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안됐다.
우여 곡절 끝에 박사학위를 받고, 취업을 하고, 달라스에 취업하고, 아이들이 둘 태어나고, 집을 사고, 첫째 아이 심장수슬 등등 10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하루에 몇번씩 화장실을 들낙거리는 날들이 반복됐다. 가끔은 괜찮은 날도 있었는데, 딱히 무슨 요인때문에 그 날은 괜찮은지 도무지 패턴을 찾을수가 없었다. 하루 일과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뭘 하며, 뭘 먹었고 화장실은 언제 갔는지 기록도 해보았지만 몇일 하다 그만 두기도 여러번 했다. 과민성 대장에 거릴고 나서야 알았다. 그 전에 매일 아침 화장실에 가서 속 편하게 볼 일 보고 나오던게 당연한게 아니고 감사할 일이었다는걸.
2020년 코로나로 재택 근무를 하던 어느날 인터넷에서 봤던가. 보리차가 과민성 대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걸. 별로 기대없이 시작했는데 조금 효과가 있는듯 했다. 처음에는 끊여서 마셨는데, 이것도 귀찮아서 나중엔 그냥 상온 온도 물에 큰 티백 하나 집어넣고 물 대신 마셨다. 어디 갈 때도 물병을 가지고 다니고. 몇달이 지난 어느날 문득 알았다. 더이상 과민성 대장 증상이 없다는걸. 보리차를 마신것이 확실히 효과가 있는듯 싶다. 그리고 재택 시작한 이후로 출퇴근으로 쓰던 시간을 아침에 꾸준히 운동하는데 쓴것도 효과이 있지 않나 싶다.